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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선택

2026-08-25 • 우원규

국가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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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책인가

『국가선택』은 저출생과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 중인 세계에서, 머지않아 개인이 국가를 고르는 시대가 온다고 말하는 책이다. 저자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국가를 구성하는 것은 결국 사람인데 그 사람이 줄어들고 있고, 국방·치안·복지·교육을 굴릴 인력이 부족해지면 국가라는 시스템 자체의 동력이 꺼진다는 것이다.

책이 다루는 소재는 대략 이렇게 정리된다.

① 관계의 전환 — 국가와 국민의 관계가 운명에서 계약으로 바뀌었다. 이동이 자유롭고 정보가 넘치고 언어 장벽마저 낮아진 시대에, 개인은 국가에 귀속된 존재가 아니라 국가를 고용주처럼 평가하는 존재가 된다. 저자는 애국심이 이제 "가장 구하기 힘든 희소자원"이 되었다고 쓴다.

② 인구의 임계점 — 고령 인구 비율이 30%, 40%를 넘는 순간이 문제가 아니라, 병원과 학교와 상점이 사라지는 순간이 진짜 한계라는 지적. 그리고 그것을 가장 먼저 감지하고 가장 먼저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젊은 층이라는 악순환.

③ 두 개의 처방과 그 한계 — 출산율을 올리는 길과 이민을 받는 길. 전자는 현금 지원의 한계가 뚜렷하고, 후자는 사회적 갈등을 동반한다. 독일의 손님노동자, 프랑스의 2세대 문제, 영국의 윈드러시와 브렉시트, 미국의 모순된 이민 정책이 사례로 등장한다.

④ 선별의 시대 — 그럼에도 어느 나라도 이민을 멈추지 않았다. 대신 방식이 정교해졌다. 저숙련은 줄이고 고숙련은 늘리는 방향으로 세계가 수렴한다. 캐나다는 2021년 기준 인구의 약 23%가 해외 출생자이며, 주정부가 직접 필요한 인력을 뽑는 구조까지 갖췄다.

⑤ AI는 답이 아니다 —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반박이다. AI와 로봇은 생산을 대체할 수 있지만 소비를 대체하지 못한다. 국가 생태계는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하는 인구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⑥ 한국의 좌표와 개인의 전략 — 일본은 관리되는 하강기, 싱가포르는 통제된 선별, 대만은 한국의 고위험 버전. 그 사이에서 한국은 분단 리스크와 낮은 이민 수용 경험을 안고 있다. 저자가 개인에게 권하는 것은 복수국적과 다양한 정체성, 그리고 여러 영역을 잇는 ‘조율자’ 역량이다.

2. 캠퍼스에서 확인한 것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캘리포니아에 있었다. 교환학생으로 나와 있는 나는 SEVIS라는 시스템에 기록 한 줄로 존재한다. 언제 입국했고 어느 학교에 등록했으며 학기 중 몇 학점을 듣는지가 데이터베이스에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그 기록이 유지되어야만 내 체류가 유지된다. 책에서 미국의 이민 관리 제도를 읽을 때 그것은 사례가 아니라 내 신분증이었다.

그리고 캠퍼스에는 두 종류의 장면이 동시에 있었다.

하나는 인도와 아시아계 학생들이다. 이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것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기본값처럼 보였다. 학위를 마치고, 실습 기간을 거치고, 회사에 들어가고, 그 안에서 실제로 제품과 아이디어를 만들어 사회를 바꾸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건축 매니지먼트를 목표로 하는 멕시코 출신 학생들이었다. 이쪽은 방향이 달랐다. 이미 현장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학위라는 자격을 확보해 관리자 트랙으로 올라서려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 둘이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나서는 같은 이야기의 위와 아래라는 걸 알았다. 저자가 말한 '저숙련 축소, 고숙련 확대’는 저숙련 노동을 내쫓는다는 뜻이 아니라, 학력이라는 통과 절차를 거쳐야만 진입을 허용한다는 뜻이었다. 멕시코 출신 학생들이 건축 관리로 학위를 따는 것은 저숙련 경로의 축소가 아니라 저숙련 경로의 고숙련화다. 선별은 문을 닫는 방식이 아니라 문의 모양을 바꾸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동시에 알게 된 것은, 그 문의 모양이 해마다 바뀐다는 사실이다. 취업 비자 수수료를 대폭 올리는 조치, 졸업 후 실습 제도에까지 비슷한 부담을 물리려는 논의, 체류 기간 산정 방식을 바꾸려는 규칙 제정. 내가 여기 있는 몇 달 사이에도 뉴스는 계속 갱신됐다. 최상위 티켓 한 장을 목표로 인생을 설계하는 것 자체가 리스크라는 걸, 나는 서류상으로가 아니라 분위기로 배웠다.

3. 비판적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뒤집힌 지점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펴면서 나는 결말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니 한국을 떠나라"로 끝날 것이라고. 그런 결론이면 반박할 준비도 되어 있었다. 나는 지금 남의 나라에 잠깐 나와 있는 사람이고, 그 경험이 곧 탈출의 근거가 되는 건 게으른 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은 거기로 가지 않았다. 저자가 경고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사람들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떠나고 싶어도 떠날 능력이 없는 사람들만 남는 "침전된 사회"였다. 문제는 이동이 아니라 이동 능력의 불평등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크게 얻은 문장은 결국 이것이다. 한국을 버릴 필요도, 굳이 껴안을 필요도 없다. 베이스캠프로 삼으라는 것. 베이스캠프는 버리는 곳도 아니고 눌러앉는 곳도 아니다. 거기서 출발하고 거기로 돌아오되, 정상은 다른 데 있을 수 있다는 전제를 품은 단어다.

미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같은 인상을 받았다. 잘 하고 있는 사람들은 미국에 의존하고 있지 않았다. 회사에 의존하고 있지도 않았다. 자기 관심사와 자기 방향에 맞는 자리를 찾아 움직이고 있었고, 그 이동이 가능한 이유는 그들에게 '프로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가가 공급자를 고르는 시장에서 선택받는 조건은 국적이 아니라 그 프로다움이라는 걸, 책을 읽기 전에는 막연히만 알고 있었다.

4. 몰랐던 숫자, 그리고 착시에 대하여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부끄러웠던 부분은 이민이나 인구가 아니라 노후였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39.7%다. OECD 평균 14.8%의 2.7배이고 회원국 중 1위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소득의 구성이었다. 한국 노인 소득에서 근로소득이 49.9%를 차지하고 공적 이전소득은 29.1%에 그친다. 사적 퇴직 이전소득은 거의 없다. 한국의 노인은 연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일해서 산다.

여기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왜 이걸 몰랐을까. 처음엔 언론이 감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그렇지 않았다. 2015년 49.6%에서 2017년 45.7%, 2019년 43.8%, 2021년 43.4%, 2023년 40.4%로 이 숫자는 계속 낮아졌고, 각 시점의 보도는 전부 사실이었으며 전부 "개선"이었다. 은폐가 아니라 추세 보도가 수준 인식을 대체한 것이다. 나아지고 있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으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묻지 않게 된다.

이건 연금 숫자에서도 똑같았다. 나는 '13%'라는 수치를 대단한 부담률처럼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8년에 걸쳐 인상되어 2033년에 도달할 보험료율이고, 정작 받는 쪽 지표인 소득대체율은 33.4%로 OECD 평균 43%에 못 미친다. 내는 비율과 받는 비율과 국가가 쓰는 비율은 전부 다른 숫자인데, 나는 그 셋을 하나로 뭉뚱그려 알고 있었다.

3학년으로서 이 책에서 얻은 실무적 교훈은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분노가 아니라 습관이다. 지표를 직접 열어보고, 방향과 수준을 구분해서 읽는 것. 이건 진로에서도 똑같이 쓰이는 능력이다.

5. IEEE에서 들은 조언과 겹쳐 읽기

책을 정리하던 즈음 IEEE Pioneer Branch 모임에서 한 교수님의 조언을 들었다. 전문성은 '골드 디깅’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디에 돈이 몰리는지를 쫓아다니면 그때그때 유리해 보일 수는 있어도 축적되지 않는다. 자기 최면을 걸어서라도 자기 꿈에 맞춰야, 길고 안정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책의 논리와 나란히 놓으니 두 이야기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국가가 사람을 고르는 시장에서 선택받는 사람의 조건은 결국 대체 불가능성인데, 유행을 따라간 이력은 유행이 지나면 같이 사라진다. 방향을 스스로 정한 사람만이 자기 자리를 계속 다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번 학기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게 됐다. 학점이나 이력이 아니라, 다른 사회에서 일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몸으로 겪고 사람을 최대한 많이 만나보는 시간이라고. 규격에 나를 맞추는 대신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되면, 그때 비로소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내가 정할 수 있게 된다는 걸 여기서 배우고 있다.

6. 마무리 — TSE는 나를 정의하지 않는다

이 책은 내가 Technical Sales라는 방향을 생각하게 된 이유를 더 분명하게 만들어줬다. 기술을 이해하되 기술 안에만 머물지 않고, 고객과 엔지니어링과 공급망 사이를 잇고, 성과가 특정 코드베이스가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과 관계로 축적되는 일. 저자가 말한 '조율자’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물론 솔직히 짚어야 할 점도 있다. Technical Sales는 오히려 언어와 문화 의존도가 아주 높은 직군이다. "국적 의존성이 낮은 직업을 가지라"는 저자의 기준을 곧이곧대로 대면 불리해 보일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의존의 종류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순수 엔지니어링 직무의 국적 의존은 비자와 스폰서십이라는 제도에 걸려 있어 내가 통제할 수 없지만, 조율자의 의존은 언어와 감각이라는 역량에 걸려 있어 축적하고 이전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반도체·임베디드 생태계를 몸으로 아는 사람이 그것을 다른 시장의 언어로 번역하는 역할은, 베이스캠프가 없으면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게 있다. TSE는 내가 진로와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의 일부이지, 나 자신을 정의하는 이름이 아니다. 직함이 나를 설명하게 두는 순간 그 직함이 흔들릴 때 나도 같이 흔들린다. 책이 경고한 것이 정확히 그거였다. 하나의 소속에 정체성을 걸어둔 사람은 그 소속이 약해질 때 함께 가라앉는다.

그러니 결론은 떠나는 것도, 남는 것도 아니다. 떠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되 떠나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 것. 능력을 갖추면 남는 것도 선택이 되지만, 갖추지 못하면 남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스물 몇 살의 지금 할 일은 국적을 정하는 게 아니라, 어느 쪽이든 내가 고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참고

  • 우원규, 『국가선택』, 미래의창, 2026.
  • 국민연금연구원 분석, OECD『한눈에 보는 연금 2025(Pensions at a Glance 2025)』 — 노인 소득 빈곤율 및 소득 구성
  •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2022~2072년」 — 고령인구 비중 전망
  • 보건사회연구원, 「OECD 주요국의 공·사 연금 구조 변화」 — GDP 대비 공적연금 지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