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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넥

2026-08-01 • 댄 왕

브레이크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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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다리는 걷어차인 것인가, 잊혀진 것인가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선진국이 자신은 보호무역으로 성장해놓고 후발국에게는 자유무역을 강요한다고 썼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뒤 사다리를 걷어찼다는 것이다. 이 비유는 오랫동안 강력했고, 지금도 미국의 관세와 수출 통제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소환된다. 그러나 댄 왕의 『브레이크넥』을 읽고 나면 이 비유는 시간에 잊혀졌다고 생각이 든다. 2026년의 미국은 사다리를 걷어찬 것이 아니라, 사다리를 어떻게 만드는지를 잊어버린 쪽에 가깝다.

책에 나오는 ‘포그뱅크(FOGBANK)’ 일화가 이 차이를 압축한다. 포그뱅크는 미국 핵탄두의 핵심 소재다. 그런데 2000년대에 이 물질을 다시 만들어야 했을 때, 미국은 제조법을 재현하지 못했다. 설계도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술자들이 은퇴하고 그들의 손끝의 "기술력"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걷어찰 사다리가 있으려면 먼저 사다리를 들고 있어야 한다. 미국은 그 사다리를 내려놓은 지 오래다.

이 리포트는 댄 왕의 틀을 빌려 지금 벌어지고 있는 AI 경쟁과 관세 전쟁을 읽어보고자 한다. 최신 AI 트렌드(DeepSeek V4, Kimi K3) 등은 책이 제공한 분석을 사례에 넣어 분석해보고자 한다.

2. 공학자의 나라와 법률가의 나라

댄 왕의 주장은 단순하다. 중국은 공학자가 통치하는 나라고, 미국은 법률가가 통치하는 나라다.

중국과 미국은 문제를 인식하는 태도가 다르다. 가령 교량을 놓는 문제가 있다고 가정하자. 공학자(중국)는 교량의 구조와 안정성을 보고, 법률가(미국)는 절차의 합법성과 타당성을 본다. 공학자에게 좋은 결과란 서 있는 다리고, 법률가에게 좋은 결과란 정당하게 진행된 심의다.

그래서 베이징-상하이 고속철은 3년 만에 완공되었고, 캘리포니아 고속철은 20년 가까이 환경영향평가(EPA)와 소송 사이를 떠돌았다. 중국은 도로와 주택을 수요보다 먼저 만들고, 수요가 따라오기를 기다린다. 미국은 투자를 줄이고 자산을 축소하며, 사유재산 보호와 절차적 정당성을 최우선에 놓는다.

이 책은 중국을 찬양하는 책이 아니다. 4장에서 저자는 이 공학적 사고가 어떤 참사들을 불러왔는지 서술한다.

미사일 궤도를 계산하던 과학자 쑹젠은 '사이버네틱스’의 언어로 인구를 다뤘다. 그는 중국의 적정 인구를 7억 명으로 계산했고, 출산율이 유지될 경우 인구가 수십억 명에 이른다는 모델을 제시하고, 공산당은 그를 신뢰했다. 미사일 탄도를 정확히 계산하는 사람이라면 인구의 미래도 정확히 계산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40년간의 재앙이었다. 임신중절을 강요하는 부대가 시골에 파견되었고, 공무원들은 집을 부수고 직장에서 해고하는 방식으로 ‘창의적으로’ 출생을 통제했다. 수천만 명의 여아가 통계에서 사라졌다.

제로코로나도 같은 논리의 산물이다. 2022년 봄, 상하이는 두 달간 봉쇄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국제적인 도시의 시민들이 굶는 것을 걱정했고, 공동구매로 간신히 끼니를 이었다. 얼굴 인식과 동선 추적으로 인구 전체를 하나의 제어 대상으로 다루는 방식은, 고속철을 3년에 짓는 능력과 정확히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이 책의 진짜 주장은 "중국이 옳다"가 아니라, 톈진의 마천루와 한 자녀 정책이 같은 사고방식의 앞뒷면이라는 것이다.

3. AI 개발의 방향은 왜 갈라졌는가

2025년 책의 논지를 현재로 가져와보자. 2026년 현재, 미국과 중국의 AI 개발은 확실히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 있다. 미국은 풍부한 연산 자원 위에서 거대 모델을 훈련하고, 이를 에이전트로 만드는 데 집중한다. Claude나 GPT 계열은 가중치를 공개하지 않고, API 과금으로 수익을 회수한다. 자본집약적이고, 설계에 집중하며, 고마진을 노린다. 댄 왕이 3장에서 비판하는 "저자본, 고가치"의 월 스트리트적 사고가 바로 이것이다.

중국은 다른 길을 갔다. DeepSeek는 반도체 수출 통제라는 제약 아래에서 아키텍처 효율로 돌파했다. 희소 어텐션, MoE, 긴 컨텍스트 같은 선택은 모두 "적은 연산으로 같은 성능"이라는 제약에서 나온 해법이다. 2026년 4월 V4를 공개하고 7월에 정식 출시하면서, 연산을 전력처럼 취급하는 피크·오프피크 요금제까지 도입했다. 이것은 소프트웨어 회사의 발상이 아니라 인프라 공학자의 발상이다. 그런데 이 구도를 결정적으로 흔든 것은 Kimi K3였다.

2026년 7월 문샷AI가 공개한 K3는 파라미터 2.8조 규모로, 지금까지 공개된 오픈웨이트 모델 중 가장 크다. 100만 토큰 컨텍스트를 지원하고, 코딩과 에이전트 벤치마크에서 미국 최상위 직전 세대 모델들을 앞질렀다. 그리고 7월 27일, 문샷은 전체 가중치를 수정 MIT 라이선스로 공개해버린다. 이는 중국적 사고의 결정체이다.

이 중국적 사고는 책 2장에서도 들어난다. 팬데믹 초기, 마스크와 개인보호장비를 두고 미국 기업들은 '생산 비용’을 계산했고 중국 기업들은 '놓치는 이윤’을 계산했다. 대기업들이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뛰어들었고, 결국 과잉생산으로 아무도 큰 이윤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시장은 중국이 가져갔다.

K3의 배포 방식은 이 공식을 그대로 가져온다. 자기 마진을 스스로 0에 수렴시켜 상대의 수익 구조를 무너뜨린다. 실제로 K3 공개 직후 중국 내 경쟁사 주가가 급락했고, 미국 AI모델들의 API 과금 논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받게 되었다. 누구나 자체 호스팅할 수 있는 모델이 상위권 성능을 낸다면, 폐쇄형 모델이 프리미엄을 유지할 수 있을까?

중국은 AI를 소프트웨어 산업이 아니라 제조업으로 다루고 있다. 과잉공급으로 시장을 태우고, 마진을 버리고 생태계를 먹는다. 에너지와 전기차 분야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미국의 수출 통제가 낳은 역설이다. 댄 왕이 5장에서 지적하듯, 미국이 반도체 공급을 끊자 중국은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 개발에 자원을 쏟았다. 통제는 중국을 멈추지 않고 오히려 부추겼다.

4. AI 시대에 제조업이 결정적인 이유

댄 왕은 3장에서 기술의 핵심 요소를 “도구, 명확한 지침, 절차적 지식” 3가지로 나눈다. 여기서 절차적 지식은, 수십년간 기술이 손에 익은 기술자만이 가지고 있는 무기이다.

팀 쿡은 "미국의 금형 전문가를 모두 모아도 회의실 하나면 충분하지만, 중국은 축구장 몇 개를 채울 수 있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아이폰을 만드는 것으로 더 유명한 정저우의 폭스콘 단지는 하나의 도시이자, 이 "절차적 지식"의 무형 집합체이다.

미국은 테슬라와 mRNA 백신을 만들지만 마스크와 면봉은 만들지 못한다. 보잉은 맥도넬 더글러스와 합병한 뒤 투자자 중심 의사결정으로 기울었고, 저자의 표현대로 절차적 지식을 잃은 빈털터리 제조업이 되었다.

한국은 어떨까? 출처 입력

삼성전자의 엑시노스를 보자. 갤럭시 S25에서 엑시노스는 사실상 배제됐고, 업계에서는 시스템LSI와 파운드리의 존속 자체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퀄컴에 지불한 칩 구매 비용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손실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칼을 갈고 2nm GAA 공정으로 만든 엑시노스 2600을 들고 돌아왔다. 2나노 수율도 20%대에서 60% 이상으로 개선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돌아왔다"가 아니라 "돌아오는 비용"이다. 몇 세대 동안의 비판, 조 단위의 손실, 그리고 그 사이 잃어버릴 뻔한 인력과 공정 노하우가 바로 포그뱅크가 보여준 교훈이다. 제조 역량은 한 번 손에서 놓으면 돈으로 되사올 수 없다. 재현하는 데 수년이 걸리고, 그 사이 잠식당할 위기에 놓이게 된다.

배터리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한국은 셀 제조에서 앞서 있지만 양극재·음극재·정제 공정은 중국 의존도가 깊다. 중국은 광물에서 셀까지 이어지는 풀스택을 완성했다. 어느 한 층위에서 뛰어난 것과, 전 층위를 쥐고 있는 것은 이해관계가 다르게 작용한다.

5. “고래 싸움” 사이의 새우의 전략

가장 시급한 것은 미국의 대중 통제가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경로를 직시하는 일이다. 미국의 수출 통제는 중국의 반도체 자립을 앞당겼다. CXMT와 YMTC의 성장은 그 결과다. 지금까지 한국의 메모리 우위는 안전지대로 여겨졌지만, 중국이 범용 D램과 낸드에서 물량을 밀어내기 시작하면 그 우위는 가격에서 먼저 무너진다. 태양광과 배터리 시장이 어떻게 잠식되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즉 우리가 마주한 위험은 "미국과 중국 중 누구 편에 설 것인가"가 아니라, 미국의 정책이 만들어낸 경쟁자가 우리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편을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역량의 문제다.

그래서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안일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 지금의 호황은 구조적 우위가 아니라 하나의 싸이클의 파도일 수 있다.

둘째,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를 수익성만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엑시노스의 교훈을 통해, 비판을 받을지언정 절대 제조업에 손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제조업은 정지 버튼이 바로 리셋 버튼이다.

셋째, 그리고 책이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경직된 흑백의 정치 체계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댄 왕은 미국에 더 많은 기술 관료가 필요하고, 중국에는 이견을 표출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공학자의 판단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반대로 절차만 남고 결과를 만들지 못하는 법률가의 나라도 답이 아니다.

우리는 미국식 절차와 중국식 속도를 모두 가져갈 수 있는 유연한 새우가 되어야 한다.

6. 마치며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오래 남는다. 저자는 미국이 "자발적인 개발도상국"으로 남아, 개발이 끝난 선진국이 아님에 감사하며 이전 성장의 DNA를 되찾기를 바란다고 썼다.

한국은 누구보다 개발의 고통을 알기에, 더 절실하게 이 태도를 유지해야한다고 생각한다.

AI가 모든 것을 대체할 수는 없다. 모델을 훈련하는 것은 GPU고, GPU를 만드는 것은 공장이며, 공장을 돌리는 것은 문서에 남지 않는 손의 지식이다. AI 시대일수록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어디에 몇 명 있는가가 결정적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마음에 와닫는 말 한마디와 함께 글을 마친다.

인구 대비 공학자의 숫자가 공산당의 정책이나 워싱턴의 관세보다 중요하다. - 댄 왕 -